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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제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밥숟가락 뜨는 법도 잊어버린 할머니가 된 내가 의미 없이 환하게 웃고 있다면, 그때 나는 나만의 위대한 성취를 해내는 중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아온 소설가 심윤경이 작가 활동 20년을 맞아 처음으로 에세이를 펴냈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들에 나온 좋은 어른들의 원형은 ‘할머니’였다고 말한다. 책에는 작가가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할머니의 사랑법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는 조용한 사랑으로 작은 영혼을 채워준 할머니의 지혜로운 양육 방식은 오늘날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려다 오히려 실패하고 마는 양육자들에게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해준다. 소설가로서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심윤경은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장착하고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면서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육아 분투 속에 새로이 되새기게 된 할머니의 사랑과 중년에 겪게 된 우울과 소설가로서의 위기, 가족과 친구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작가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선사한다. 더 나아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잔상을 일깨우고,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준다.
저자
심윤경
출판
사계절
출판일
2022.08.19

 

6. 아이에게 무언가 잘해주려 애쓰다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불만과 다툼의 늪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 힘써 좋은 것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면 족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14. "마음이 달라지셔서 그렇다." 노인의 치매를 일컫는, 그 동네의 부드러운 어법이었다. 

16. 시외할머니를 만난 뒤로 나는, 사람의 한 생을 마지막 한 방울로 증류한다면 각자에게 남는 그 마지막 정수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34.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는 쉬, 똥, 침, 코, 토, 잠, 젖, 신기하도록 모두 한 글자였다. 아마 생명과 양육 활동이 그토록 근원적인 것임을 언어로서도 상징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한다. 

41.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의 원래 모습, 몸을 낮추고,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데굴데굴 구르고,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것, 만지고 부비고 냄새 맡고 즐기는 것. 내가 강아지를 보자마자 자동으로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딸에게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것.

56. 지금 나를 괴롭히는 아이의 예민한 기질은 훗날 섬세한 감각으로 발전해 그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는 아주 많은 관용을 필요로 할 것이다. 

62. 할머니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하무로 내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나쁘다거나 못됐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별나다고 했다. 엄마뿐 아니라 내가 못마땅할 때도 똑같이 별나다고 했다. 사람마다 제각각 별난 개성들이 있는데, 함께 살다 보면 그것이 때로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곤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다. 

80. 야단침의 효용. 내 성질과 좌절감에 못 이겨 폭발하고 있을 뿐, 이 행위는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105. 예스와 노가 분명치 않은 환경에서 아이는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믿을 만한 기준이 없이 오로지 상대방의 기분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다. 자신감과 자기만의 생각이 자라날 수 없다. 예스와 노가 분명치 않은 환경에서 잘 자란 아이는 알아서 눈치 보는 아이다.

124. 상담학 교과서에 보면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고 버틴다'라고 되어 있어. 나는 그걸 글로 배우고 외웠지만 사실은 버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거든. 그런데 그날 저런, 이라고 말하고 가만히 있는 동안 버틴다는 게 뭔지 이제 알겠다 싶은 기분이었어.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거야. 그게 버티는 거였어. 

139. 꿀짱아가 긍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 내가 그 일에 대해서 진실로 잘 모르는 길뿐이었따. 나는 잘 모르겠으니 꿀짱아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라도 꿀짱아의 스케줄과 행사에 대해 무심해지려 노력했다. 

163. 자식 문제에서는 머리를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것이 더 어렵다. '할머니가 알 만큼만' 머릿속에 집어넣기로 했다. 두서없고 효율이 떨어졌지만 효율 대신 자발성을 얻었다. 

164. 지금은 할머니의 그 허술한 '장혀'가 바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176. 나는 죽음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시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꺠달았고, 지혜라는 것은 평생 저지른 실수에 다름 아니라는 것, 살면 살수록 세상일에 대해,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해 점점 더 잘 모르게 된다는 것

207. 부모로서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고 생색내지 않는 것. 자식에게 어떤 기대나 대리만족도 추구하지 않아 부채의식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는 것. 부모로서 고생스러움은 지극히 당연히 당신이 담당해야 할 몫이고, 잘한 것이나 좋은 것이 있따면 모두 자식의 몫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아버지와 고모들은 그 보이지 않는 응원 속에서 용기를 내어 각자 가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삶과 부딪쳤다. 

별나서 (틀림이 아닌 다름. 부대낌의 문제)
저런 (공감과 스스로할 때까지 버티기) 
장혀 (과정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