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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자존감의 힘 / 김선호, 박우란 / 길벗

  • 인상 깊었던 문구

P17. 자존감은 단지 자아존중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에 자아 존재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자아 존재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아존중감이 자라기 어렵다.
p19. 내가 있다는 존재감은 나 스스로의 힘으로 느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바라봄을 통해 인지된다.
p31. 그 첫출발은, 타인으로부터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인정받는 듯한 시선을 받는 것이다. 특히 경쟁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일수록 실패와 상관없이 아이가 나름 만들어놓은 결과물에 관심 어린 눈빛을 보낼 필요가 있다. 
p48. 시우와 우영이가 매일 자기 중심성 안에서 의견 대립으로 다투면서도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는 이유는 바로 ‘중심성의 유지’에 있었다. 표면상 자기를 더욱 중심에 두고 상대방을 비방한 듯 보이나, 그들은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자기 중심성’을 적당히 유지해가는 외줄 타기를 했다. 그렇게 ‘자기 중심성’을 바라보며 존재를 매 순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p73. 학원 시험을 통해 3년 뒤 특목고에 떨어지는 좌절감을 몇 개월에 한 번씩 반복해서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좌절감은 깊은 수치감을 안겨주고, 누가 소곤거리기만 해도 자기 이야기로 느껴지는 모멸감으로까지 다가온다... 지속되는 무기력은 자존감을 손상시킨다. 더욱 무서운 것은 간헐적 희망이다. 
p75. 초등학생들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성취감은 지금 현재의 만족감을 확보하려는 습관에 달려 있습니다. 간헐적 희망에 의존하는 도전 습관은 자아존중감을 계속 흔들어댈 것입니다. 
p77. 그런데도 왕따라고 느끼고 상처받으며 분노하는 이유는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의 경험에 있다.
p81. “네가 계속 골키퍼를 하면서라도 같이 놀겠다고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걸 정말 원한다면 선생님은 모르는 척 존중해줄 수 있어. 그런데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그건 정말 너가 원하는 게 아니야. 분노를 억누르면서까지 그 상태에 머무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그게 반복되면 점점 네 자신이 없어져버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학대하면 아무도 너를 존중해주지 않아. 너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사흘 정도 기다려주마. 그 이상은 안 된다.”
p86. 상냥한 폭력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감추는 데 있다. 지나친 자기 방어의 한 단면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파고들어 상처를 남기거나 무기력하게 만든다. 맞서 싸울 명분이 없게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상냥한 폭력이 지속된다. 
p92. 책임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를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아는 것. 어떤 현상이나 증상들이 아이들에게 일어났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p127. 내 자녀가 혼자서든 여럿이든 쉬는 시간에 놀 거리가 있는지 확인하면 학부모로서 자녀의 자존감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존재감이 있어 보이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목소리를 높이고 과장 행동을 하는 아이는 그럴수록 외면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P186. 그 누가 너를 위로해도 소용없어. 네가 너를 위로해주는 게 진짜야. 
p187. 많은 경우 타인에게 상처받아서 자아존중감이 낮아진다고 여긴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 자기 방어기제를 표출하지 못했을 때, 그러한 자신의 나약함에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어기제는 비겁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잠시 나를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 해준다. 심리적 무장해제가 답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무기를 꺼내 들지 못했던 자신을 바라보며 작은 말 한마디, 한 줄기 눈물로 보듬는 ‘자기 위로’는 지난 자신을 용서하는 소중한 순간이 된다. 
p193.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완벽하라’는 표현은 ‘무기력’과 같다고 말한다. 완벽이 최선인 듯 훈육할수록 자녀의 자존감은 더욱 떨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격려야말로 자녀를 ‘리더’에까지 오르게 하는 ‘자아존중감’을 길러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