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728x90

연필로 쓰기 / 김훈 / 문학동네

  • 인상 깊었던 문구

p82. 결혼의 추동력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밥을 벌어야 먹는다. 인간의 모든 영위는 물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물적 토대 없이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는데,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구태여 결혼할 필요가 없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쓰라. 재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현세적 가치를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사업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결혼은 부부가 스스로 확보한 물적 토대 위에 생활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결혼은 놀이가 아니다.
p96. 사회 공공성의 문제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 없는 소수로 몰아서 고립시키는 공작은 ‘광고와 경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오래된 방식인데,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p117. 이순신이 남긴 기록에 의지해서 그의 지도력이 작동하는 모습을 헤아리건대, 그는 우선 이 모든 악조건과 그의 정치적 불운을 모두 ‘사실로 긍정하고 있다. ’ 사실‘에 정서를 이입시키지 않고 ’ 사실‘을 오직 ’ 사실‘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그의 리더십에 한 중요한 본질을 이루는 듯하다. 
p123. 그는 정치적 불운과 박해를 백의종군의 방식으로 전환시켰으며, 군사력의 열세에서 우세로, 수세에서 공세로, 죽음에서 삶으로 끊임없이 전환해 나아갔고, 그 전환의 목표를 향해 수군 부대를 몰고 나갔다. 이 전환의 힘이 전투에서 발현되었을 때 그는 한산도 싸움에서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고, 이 전환의 힘이 그의 실존적 인격 안에서 작동될 때 그는 백의종군의 역경을 건너가면서 명량 싸움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p129. 죽음의 현실을 직시하는 바탕 위에서 역설적이게도 삶의 전망을 열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부하를 지휘하는 전투 현장에서나 그가 남긴 언행 속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리더십은 물적인 열세 속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과 싸우기 위한 단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p138. 민주적이고도 참여적이고 온정적이고 여론 수렴적인 리더십이 현대사회의 만인이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적 성격만으로 리더십의 내용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이순신의 생애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리더십이란 때로는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고 회피하려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다중을 거슬러가면서 그 다중을 다시 몰고 나갈 수 있는 덕성까지 포함해야 온전하다 할 것이다.
p162영광과 자존만으로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통과해온 한국 현대사는 성취와 잘아만이 아닝라 반성과 고백의 기조 위에서 쓰여야 한다. 
p168. 나는 먹고사는 일의 무서움에 떨었다. 나는 삶 앞에서 까불지 말고 경건해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가장 적은 것들만 소비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p241. 그 후 한국어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바뀌어서, 조사가 얽어내는 구문의 헐거움이 오히려 한국어가 갖는 자유의 공간이며, 이 공간을 잘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표현과 논리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